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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는 침실 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느 때와 같은, 깨끗한 방이다. 이불, 베개, 모두 하얀 색으로 맞추고 침대와 커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방이니까.

 

지나칠 정도로.

 

아까 연락이 온 것을 듣자하니 오늘 저녁에는 드디어 집에 나단이 온다. 2주 만에. 아무리 자신이 무덤덤하게 군다고 해도 2주 만에 집에 돌아오는 연인한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필요할 것 같단 말이지.

 

엘리야는 예전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소설을 떠올렸다. 그 책에 따르자면 이런저런 것들은 분위기를 많이 띄워준다고 했지. 예를 들자면 술이라던가, 꽃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예쁜 옷 같은 거... 종종 마시곤 하는 얼린 칵테일을 꺼내 보자니, 엘리야는 아직 마시지도 않았는데 요정을 불러 깽판을 치고 싶어진다. 이건 아닌 것 같다.

 

꽃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요즘 올드 로즈를 사서 색색으로 물들이는 게 유행이라고 매점 주인이 보증해주었다. 장미를 적당하게 잘라 꽃병에다가 꽂아 놓고, 꽃병을 방에 두기 위해 협탁 위에 두었던 비술서도 간만에 치워 버렸다. 다음은 옷인가. 옷이 뭐가 있지.

 

옷장에는 옷이 몇 벌 있었다. 외출복, 잠옷, 평상복, 이건 던전 갈 때, 이건 늑대우리 갈 때 입는... 그 옷들을 다 젖혀 보니 그 아래에서 그래도 괜찮은 옷이 몇 벌 보였다. 얇은 천으로 만들어서 잘 보면 비칠 것 같은 옷과 아예 적은 천과 끈으로 만든 것. 둘 중에 어느 것을 입느냐가 문제인데.

 

천이 적은 쪽? 천이 얇은 쪽?

 

아 이거 진짜 고민되네!

 

톤베리 스승님이 봤다가는 별 쓸데없는 걸로 고민 하는구나라고 말하겠지만 엘리야는 진지했다. 어떻게 하면 활력 수치가 높은 애인을 침대로 꼬드기면서도 지나치게 흥분시키지 않아 자신의 체력이 바닥나지 않게 할까. 한참 고민하던 학자는 끈을 집었다.

 















눈을 떴을 때는 한낮이었다.

 

아니, 한낮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오후.

 

나단은 이미 일어나 있었는지 엘리야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좋은 아침, 학자!”

 

“...넌 이게 아침으로...”

 

, , 학자는 목을 가다듬었지만 여전히 쇳소리가 났다. 팩 하고 노려보자 나단은 무슨 일 있냐는 듯 활짝 웃는다. 내가 못 살아.

 

일어나서 나 놀랐지 뭐야! 방안에 꽃이 있었어! 이거 그거지? 요즘 유행하는 올드 로즈?”

 

학자가 일어나 앉자 몸에서 얇은 이불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깜짝 놀란 전사는 양 뺨을 잡고 있었다.

 

... 옷이...!”

 

“..., 옷이.”

 

야해....!”

 

뭐야, 못 봤나.

 

입은 보람이 없구만.

 

학자, 엘리야는 짧게 한숨을 쉬고 차를 마시려고 했다.

 

전사가 달려든 덕분에 다 쏟아버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