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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8

2019. 4. 28. 22:31 | Posted by 호랑이!!!

 

 

방에 도착하여 아라벨라의 천가방을 열면 반들거리는 비늘이 불빛에 드러난다.

 

한 번도 깬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벌써 며칠이나 되었는데 어째 이 비늘은 갈수록 반짝이고 상처도 쌩쌩하게 낫는다.

 

“...자고 있나아.”

 

마르틴, 너무 가까이 가면 위험-”

 

파드득.

 

꼬리가 떨리자 아라벨라는 마르틴의 팔을 홱 잡아당겼다.

 

긴장한 두 쌍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꼬리를 보았다.

 

꼬리는 퍼득퍼득 움직이고, 또 가만히 있기도 하고, 또 파다닥 움직였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그 사이에서 빼꼼, 조그만 머리가 튀어나왔다.

 

?”

 

머리는 이 곳이 어디인지 파악하듯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라벨라는 마르틴을 등 뒤에 둔 채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만져볼래.”

 

안돼, 마르틴!”

 

그러나 마르틴은 아라벨라의 팔 아래로 몸을 숙였다가 앞으로 뛰쳐나갔고 아라벨라는 마르틴의 팔을 잡으려고 했으나 겨우 손 끝만 스쳤다.

 

몸이 따뜻하네!라며 감탄하는 마르틴의 손 앞에 납작하고 길쭉한 뱀 같은 주둥이가 입을 벌렸다.

 

두 줄 촘촘하게 돋아난 이빨들은 하얗고 뾰족했고, 이 뱀이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거기에 또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울자 그 안에 길쭉한 송곳니가 드러났는데 동물 대백과를 읽은 아라벨라의 눈 앞에 송곳니는 독액을 먹잇감 안에 삽입할 때 쓴다는 문장이 스쳐지나갔다.

 

.”

 

급박하게 손을 뻗은 아라벨라의 눈 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당연히 마르틴의 손을 깨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뱀은 오히려 비늘 돋힌 뺨을 마르틴의 손등에 기댔다.

 

마르틴이 활짝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뱀의 턱 아래를 간질이자 뱀은 웃는 것처럼 주둥이를 짝 벌리더니 눈을 깜박였다.

 

이상하네, 뱀한테도 눈꺼풀이 있던가.

 

그렇게 생각하다 아라벨라는 그 뱀이 날개를 퍼득이면서까지 마르틴의 몸에 찰싹 달라붙자 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무튼 다행히도 저 뱀이 마르틴을 해치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이후로 아라벨라는 마르틴과 함께 날고기를 뱀한테 먹여 보고 씻기기도 하고 (마르틴의 고집으로)핸드백 안에 쿠션과 솜, 천 조각 같은 것을 담아 뱀의 침대도 만들었다.

 

둥지가 생기는 것이 기쁜 뱀은 삐 삐 울다가 아라벨라의 침대에서 마르틴과 함께 놀다 지쳐 잠들었다.

 

처음에는 저 뱀 같은 것이 언제 돌변해서 마르틴을 물거나 감아서 죽일지 몰라 아라벨라는 뜬눈으로 둘을 지켜보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나흘이 지나는 동안 둘이 사이좋은 모습을 보았더니 이제는 둘만 놔두어도 될 정도로 안심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마르틴은 아라벨라의 방에서 잠들었고 아라벨라는 유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집사 프루던스는 밤중에 집안에서 움직일 때는 사람을 붙여서 다니라고 했었지만 이 시간에 사람을 깨우기에는 미안하다.

 

푹신한 슬리퍼가 발소리를 가라앉혀 주자 새삼스러운 신기함에 조심조심 발을 옮기니 발 소리가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들리지 않는다.

 

아라벨라는 촛대를 들고 발을 위로 옮겼다.

 

이전에 집사와 마주쳐 쫓겨난 3.

 

지금이라면 들키지 않을 것 같아서.

 

계단에서는 조금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고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3층으로 올라온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다만.

 

1, 2층과는 공기부터 달랐는데 더 차갑고, 더 공허한 느낌이 났다.

 

복도조차 다른 층보다 넓어서 아라벨라는 계단을 올라와서는 한 바퀴 빙글 돌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밟힌 티가 덜 나는 창백한 푸른빛의 카펫은 아라벨라의 발 아래 고개를 숙이고 벽에 걸린 그림은 아라벨라의 촛불에 모습을 드러낸다.

 

아라벨라는 그림에 촛대를 가져갔다.

 

그림 안에서는 갑주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제각기 호수나 숲을 배경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기법에 따라 묘사되었다.

 

3층 방은 문이 잠겨있지 않아서 하나씩 열어볼 수 있었다.

 

작은 방 하나는 커다란 책상과 커다란 의자가 있는 개인 서재였고, 벽을 따라 늘어선 책꽂이에는 책보다 종이나 얇은 천이 더 많다.

 

방 하나는 갑옷이나 무기, 용도를 알 수 없는 온갖 것들이 전시처럼 늘어서 있다.

 

말 등에 얹는 것 치고는 납작하게 생긴 안장을 건드렸더니 보기보다 더 단단했다.

 

언제든 쓸 수 있게 손질해두는 것인지 가죽끈을 꼬아 만드는 줄도 몇 개나 옆에 놓여 있고 둥근 링 같은 것도 있는데 아라벨라는 말이나 소 같은, 흔한 짐승의 것이 아닌 다른 냄새를 맡고는 가죽끈을 들어올렸다가, 바깥에서 갑자기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나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 했다.

 

끈을 내려놓고, 아라벨라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소리는 가장 안쪽에 있는 방에서 들려왔다.

 

후 불어 촛불을 끄고 살금살금 다가가니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붉은 머리에 노란 눈의 젊은 집사가 무릎을 꿇고 무어라고 말한다.

 

바실리, 바실리... 제발, 바실리. 빨리... 왜 산에 가서-”

 

바실리라면 할머니 이름인데.

 

아라벨라는 문에 가까이 다가왔다.

 

차갑고, 빤히 쳐다보고, 조용하고, 뻔뻔한 구석도 있는, 파충류 같은 그 집사가.

 

울고 있다.

 

우는 남자를 구경하는 취미는 없었기에 돌아서려다 아라벨라는 다음 들리는 말에 몸을 홱 틀었다.

 

에멜라도 죽고...”

 

어머니가 왜?

 

비록 아라벨라의 집에서는 셰필라가 고른 사람이 집사 노릇을 하고 있긴 하지만 프루던스의 집은 대대로 렐리악 가문의 집사라고 했다.

 

삼류 로맨스 같은 소리지만, 후계자의 약혼녀인 어머니와 본 적 있다고 해도.

 

그래서 셰필라가 프루던스 대신 새 집사를 데려왔다고 해도.

 

할머니는 왜?

 

조용히 뒷걸음질 치다 아라벨라의 슬리퍼 한 쪽이 벗겨졌다.

 

동시에 프루던스의 고개가 문 쪽으로 확 틀어졌고 놀랄만한 속도로 문에 다가섰다.

 

프루던스의 눈에 도는 기묘한 빛이며,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쳐다보았기에 아라벨라는 숨이 막혔다.

 

언제부터 여기 계셨던 겁니까.”

 

“...프루던스.”

 

밤에 집 안을 돌아다닐 때에는 고용인과 함께해 달라고 말을 했었습니다.”

 

문을 금방이라도 닫아 버리려는 낌새에 아라벨라가 문을 잡았다.

 

할머님은 이 집에 계시지 않는 거야?”

 

방으로 돌아가십시오.”

 

거칠게 손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문이 쾅 닫혔다.

 

아라벨라는 닫힌 문을 한동안 바라보았다가 발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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