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호랑이!!!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아라벨라 10

2019. 5. 10. 21:33 | Posted by 호랑이!!!

 

그 풀숲에서 튀어나온 것은 기묘한 사람이었다.

 

저렇게 천 몇 장으로 몸을 느슨하게 감싸는 옷은 유행이 백 년은 지났을 터.

 

신발도 옛날 양식이다.

 

그러나 머리도 피부도 잘 손질되어서 비록 구불거리며 물결치는 그 머리도 피부도 검은 빛이라고 하나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띈다.

 

이질적이라고 할 만큼 어딘가 다르고, 강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어떤 것도 가늠할 수 없다.

 

가치관도, 나이도, 성별도, 어떤 사람인지도.

 

그 사람은 아라벨라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낙트, 우리 아가, 나의 낙트, 작은 아가, 어디에 갔던 겁니까. 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이 숲이 술렁이고 나의 분노와 나의 슬픔에 우리의 일족이-.”

 

저기요.”

 

아라벨라는 그 사람에게서 한 걸음 뒤로 떨어졌다.

 

아름답고 위압감이 있고 어디에서일지 모를 미지에 대한 공포가 일어나는 이 사람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에.

 

낙트?”

 

죄송하지만 누구신가요.”

 

주위에서 푸른 바람이 우르르 휘몰아쳤다가 일순간에 훅 가라앉는다.

 

그 사람의 머리카락이 솟구쳤다.

 

이 강풍 속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 사람은 대답 대신 아라벨라에게 다가갔다.

 

아라벨라는 반사적으로 양 손을 올렸지만 그 사람은 거기에 개의치 않고 손에 얼굴을 가져갔는데 아라벨라는 물어 뜯긴다는 생각에 손을 움츠렸지만 그 사람은 이를 드러내기는커녕 킁킁 소리를 내며 냄새를 맡았다.

 

손에서 손목으로, 팔로, 품에 고개를 가까이 하는가 싶더니 목덜미로 코를 가져가자 목에서 느껴지는 숨결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뒷걸음질을 쳐도 팔로 밀어내도 고개를 뒤로 빼어도 그 사람은 따라붙었는데 금방이라도 물어뜯길 것처럼 상대는 위협적이었지만 아라벨라는 이런 상황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몰랐다.

 

몇 시간처럼 느껴졌던 그 이상한 과정은 끝나고 그 사람은 사납게 눈을 치떴다.

 

새까만 눈이 마수처럼 번뜩였다.

 

너는 누구지.”

 

저는 아라벨라 샤틸리 렐리악입니다. 렐리악 백작 가문의 적자이고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눈에서 힘이 풀렸다.

 

“...렐리악의 아이였군. 그래, 그러니까 이해가 되는군요. 방금의 행위는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근에 아이 중 막내가 사라져서 찾으러 다니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작은 렐리악 당신에게서 아이의 냄새가 났습니다.”

 

그 사람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인지 아까보다 대하기가 편해져서 아라벨라 역시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렐리악 가문을 아십니까?”

 

이 질문은 이상하다.

 

렐리악은 백작이며 역사만은 어느 공작가나 왕가에도 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렐리악의 본가가 다스리는 이 곳이라면 부모님 이름만큼이나 렐리악이라는 이름이 친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상대는 이런 질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에 아라벨라는 더 당황했다.

 

이 산에 사는 이들은 모두 렐리악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맹이고, 친구이고, 가족이니까. 아바트가... 아니지, 최근에 본 그 아이 이름이 뭐였더라... 루하트? 아냐... , 바실리가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습니까? 실례지만 당신의 나이는? 성년은 넘겼습니까?”

 

, 성년을 넘겼습니다.”

 

그럼 어째서 바실리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지? 알비노라서?”

 

뒷말은 아주 작게 들렸다.

 

할머니를 아시나요?”

 

알다마다. 며칠 전에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 쪽을 둘러보고 온다고-”

 

죄송하지만 어느 쪽인지 가르쳐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라벨라는 그 사람의 손을 꼭 잡았다.

 

저 쪽인데 혼자서 갈 수 있겠습니까?”

 

아라벨라는 잠시 망설였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 곳은 초행이고 길을 잘 모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놀랐다.

 

과연...”

 

그렇게 놀라면서 뭐가 과연이라는 걸까.

 

그 때 반대쪽 풀숲이 부스럭거리더니 붉은 머리가 툭 튀어나왔다.

 

프루던스!?”

 

이런 곳에 계셨군요.”

 

붉은 머리의 집사는 검은 사람을 보더니 평소의 부루퉁한 표정 그대로 움찔했다.

 

“...슈체른...?”

 

프루던스.”

 

슈체른은 프루던스를 보더니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렐리악의 어린 용이여, 내일은 단단히 준비를 해서 산으로 오십시오. 그 말은 두고. ...참 맛있어 보이거든.”

 

그 사람, 슈체른은 몸을 돌렸다.

 

검은 인영이 걸음에 따라 일렁이다가 스르륵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라벨라는 데일라의 위에 올라타 고삐를 프루던스에게 넘겼다.

 

어떻게 산을 뚫고 왔는지 모를 집사는 옷이 찢어지기는커녕 머리카락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아서 눈길이 갔다.

 

아라벨라는 프루던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자신이 여기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저 사람은 누구인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당신은 내 어머니나 할머니와 무슨 관계인지.

 

물어보면 대답해 줄까?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프루던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아직 아무 말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

 

주인님께서 아직 아가씨께 말해도 좋다고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온 길에 비해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저택이 보인다.

 

정원에도 지붕에도 환하게 불을 켜 둔 저택이.

 

저택의 지붕에 걸린 커다란 깃발이 보인다.

 

날개를 활짝 편 용의 실루엣을 그린 깃발이.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라벨라 12  (0) 2019.06.03
아라벨라 11  (0) 2019.05.29
아라벨라 9  (0) 2019.05.03
아라벨라 8  (0) 2019.04.28
아라벨라 7  (0) 2019.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