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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13

2019. 6. 7. 23:47 | Posted by 호랑이!!!

 

솟아오를 때는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며 잎사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 정도의 속력이라고 한다면 데일라를 타면서 익숙해졌지만 몸을 아래가 아닌 뒤로 당기는 중력은 너무나도 낯선 것이었다.

 

[눈을 떠, 렐리악의 어린 용]

 

웃음기어린 목소리에 아라벨라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산이 아래로, 그리고 옆으로도 보였다.

 

바람에 깎인 거대한 절벽과 하늘높이 자란 나무들이 아래 보이고 그 사이로 사슴이 뛰어가거나 하늘에 새가 날아간다.

 

낮은 곳에 있을 때는 그저 흙 쌓인 언덕일 뿐 렐리악 백작주택이 있는 곳의 평지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는데 높이 올라와서 보니 높낮이가 있고 정말 산의 모양이 등뼈 같았다.

 

흐르는 녹색 바람은 기분 좋게 아라벨라를 감싸고 머리 위로는 태양만 있을 뿐이라.

 

이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오기라도 한 것 같다.

 

아라벨라는 감동적이기까지 한 경관에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어때?]

 

다시 눈을 떴는데도 여전히 그대로다.

 

바람에 눈이 말랐기 때문인지 눈가가 젖었고 눈물이 고였다가 눈꺼풀을 깜박이자 툭 떨어졌다.

 

손 아래에서 슈체른이 웃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몸 아래에서도.

 

으악!? 아니, 꺄악!? 탔어?!”

 

[그래, 탔단다. 렐리악의 어린 용아]

 

슈체른은 깔깔 웃으면서 날개를 쭉 폈다.

 

[떨어지기 싫으면 꽉 잡는 게 좋을 거야]

 

아까보다 더요?

 

아라벨라는 질린 얼굴로 끈을 꽉 쥐었고 슈체른이 날개를 세우자 속도가 정말로 빨라져서 얼굴에 바람이 마구 부딪혔다.

 

으아아아아아아...!”

 

 

 

 

 

 

 

 

마르틴은 어두운 방을 싫어한다.

 

사피야와 살았을 적의 집은 초 하나를 사기가 어려워서 해가 지기 무섭게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야 했다.

 

이삭을 줍거나 심부름을 하거나 물을 떠 오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사피야는 단 한번도 허락해 준 적이 없었기에, 마르틴은 겨울에 천으로 틀어막아야 하는 창문 앞에서 나무껍질 책을 읽었다.

 

사피야는 마르틴이 태어나고 나서 집 밖으로 거의 외출하지 않았기에, 마르틴도 자연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자랄 기회가 없는 눈치로도 사피야가 자신을 내보내지 않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가끔 신전에 가서 신관들에게 고대어를 물어보거나 더 가끔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짧은 외국어로 관심을 끌어 몇 마디를 배우는 것을 빼면, 마르틴은 바깥에서 놀 수도 없었다.

 

마르틴은 사피야를 사랑하니까.

 

비록 마르틴이 아는 가족은 사피야와 자신 뿐이었으나 수없이 많은 책을 읽으면서 보았던 가족들의 행동과 사피야의 태도는 달랐기에.

 

마르틴은 사랑받고 싶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벽 틈이나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서 책을 읽으면서도.

 

빛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머나먼 곳의 사막이나 끝없는 바다, 구름 위에 있다는 신들의 나라를 탐험하는 자신을 상상하면서도.

 

얇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거리의 웃음소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막대를 들고 칼싸움을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비치는 해가 얼마나 찬란한지, 달이 얼마나 우아한지, 그 아래에서 뛰놀고 흙을 밟고 풀을 뜯고 나무에 기어오르고 개울에서 물장난을 치고 나뭇잎으로 배를 만들고 띄워보내면 얼마나 행복할지 생각하면서도.

 

사피야가 자신을 싫어할까봐 그런 상상을 하는 모든 때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를 기다렸다.

 

사피야가 말해준 아버지는 먼 곳의 높은 사람인데 아버지가 자신들을 데려가면 봄날의 딸기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있고 몸도 아프지 않고 어머니와 아버지와 자신이 행복할 거라고 했었으니까.

 

신전의 유리창에 그려진 천사처럼 잘생긴 얼굴이기는 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던 셰필라를 보았을 때에는 기대만큼 실망했었지만, 대신 마르틴은 아라벨라를 만났다.

 

어머니가 말해주지 않았던 가족은 첫날에 어머니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왕자님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키가 크고 늠름하고 무서운 사람들이 화를 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태도에 마르틴은 감탄했다.

 

너무 넓어서 식당이 아니라 마을 광장처럼 느껴지는 곳에 나와있는 자신을 보고서도 화내지 않았고.

 

그 사람은 심지어 자신에게 장난을 쳤다.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한 장난을!

 

이후로 마르틴은 아라벨라의 동생이 되었다.

 

가방 속의 뱀에 대한 것을 공유하고 침대 위에서 뛰었고, 아라벨라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예절을 배우고 자세를 고치고 억지로 지식을 우겨넣었다.

 

그랬는데.

 

“...또 혼자 남겨졌어.”

 

작은 창문이 있을 뿐 다른 광원이 없는 복도는 검게 보일 만큼 어둡다.

 

순간 예전의 그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라 머리를 털다시피 내젓는다.

 

생각하지 마.

 

다른 생각을 해.

 

복도는 검게 보이는 그대로이고, 자신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덮어야 해.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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