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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12

2019. 6. 3. 21:17 | Posted by 호랑이!!!

 

산 어귀에 다다르면 언제 올지 알았다는 듯 슈체른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올라가지 않을 높은 바위 위에서 새까만 머리를 나부끼는 차림은 여전히 백 년 전쯤의 것이다.

 

슈체른은 휙 뛰어내려서 질색하는 아라벨라의 손에서 소풍 바구니를 앗았다.

 

보자 보자... , 이 계절에 야채까지 들었군요? 그리고 과일이랑, 햄도 좋습니다. 소시지도 먹고 싶었고... 프루던스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런담?”

 

그 사람은 도시락의 호화스러움에 한참이나 찬사를 보내다가 아라벨라를 돌아보았다.

 

그 눈빛에 탐욕이 뚝뚝 떨어진다.

 

그 아이가 아직 어립니다. 비록 당신이 더 어리지만 주인의 가족이니 그 아이가 실수를 하더라도 후한 마음으로 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말하는 것은 탐욕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아라벨라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산으로 갈까요?”

 

좋습니다.”

 

산에 오르자 전날은 달밤이 되어야 보였던 푸른 바람이 벌써부터 보였다.

 

부드러운 푸른 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지나가고 그 흐름을 흐트러뜨리거나 빨리 밀어내다가 문득 슈체른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손을 내렸다.

 

뭘 하는지 알아차렸을까? 하며 옆으로 돌아보니 슈체른은 흐뭇하다는 듯한... 아니,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꽤나 호의적인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아마 아라벨라가 산 바람을 처음 맞았는데 좋아한다던가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거겠지.

 

바실리는 원래부터 잘 돌아다니잖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이 산의 모든 곳곳을 다 알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지, 어디에 바실리가 좋아하는 딸기가 있는지, 어디가 위험한지 등... 그런데 이번에는 바실리가 기척을 없애주는 그림자의 발걸음을 신고 실종이 되어서-”

 

저는 할머니에 대해 잘 몰라요.”

 

아라벨라는 툭 내뱉었다.

 

할머니를 왜 바실리라고 부르는 건가요?”

 

바실리를 바실리라고 부르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할머니는 왜 그림자의 발걸음을 신고 실종이 되었지요?”

 

이 산에 침입자가 있었습니다.”

 

그 침입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면 대답해줄 건가요?”

 

모른다고 대답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아라벨라는 슈체른을 쳐다보았다.

 

아라벨라는 자신이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슈체른은 아라벨라가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 했다.

 

당신이 말하는 우리는 누구예요?”

 

앞서 걸어가던 슈체른은 걸음을 멈췄다.

 

뒤로 돌아보자 아라벨라는 품에 손을 넣고 있었는데 그 안에 든 것은 단도인 듯 했다.

 

“...좀 얌전한 줄 알았더니.”

 

렐리악 치고는, 하고 덧붙이는 슈체른은 말투와는 다르게 흐뭇하게 웃었다.

 

, 뒤로 물러서십시오 렐리악의 어린 용.”

 

바실리가 아직 알려주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모르고 살게 두지는 않을 테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렇게 말하며 슈체른은 아라벨라에게 도시락 바구니를 떠넘겼다.

 

아라벨라는 무거운 바구니를 옆의 바위 위에 얹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뒤로 물러나라는 말은 지금까지 더러운 것이 묻으니 조심하십시오라던가 꼴도 보기 싫으니 저리 꺼져라라는 말과 동일했다.

 

가장 바람직한 행동은 뒤로 돌아 도망치는 것이었으나 이번만은 말 그대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났고 경계와 호기심어린 시선을 받아내며 슈체른은 빙글빙글 웃는다.

 

눈을 감아주십시오. 이제부터 심오하고 우아한 마법의 증거가 당신 앞에 펼쳐질 겁니다.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 이 세상의 모든 지고지순한 정수! 가장 고귀하고 신성한 자의 증거! 자아 여러분께-비록 아가씨 한 분 뿐이지만- 소개하노니!”

 

얌전히 눈을 감기는 했지만 말이 현란해질수록 아라벨라는 품 속의 단도를 꽉 쥐었다.

 

살짝 실눈을 떠 볼까, 하는 순간 강한 바람이 불어 눈을 더 질끈 감았고, 슈체른이 부디 눈을 떠 주십시오, 라고 과장된 어투로 이야기했을 때에는 바람이 가라앉았다.

 

아라벨라는 눈을 떴다.

 

그리고 그 곳에는 마차 몇 대 만큼이나 커다란 검은 용이 비늘을 반짝이며 아라벨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은 비늘과 검은 눈동자의 용은 몸에 비해 작은 날개를 가지고 있었고 날카로운 발을 가졌지만 그 발은 누군가를 해치기보다는 땅과 풀숲을 헤치는데 쓸 법한 모양이다.

 

모양을 보고는 있었지만 아라벨라는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슴, 때로 곰, 인간, , 고양이, 쥐 같은 동물과는 달라. 겨우 마차 몇 대 만큼의 크기였으나 그가 고개를 들면 거대하고 오래 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에는 위엄이 서려 있었으나 상냥하고,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아서 마치 거대한 바위, 깎아지른 벼랑들, 고대의 언어가 새겨진 거대한 돌 앞에 선 것 같았다.

 

푸른 빛을 띤 바람이 용의 몸을 타고 흐르고 갑주 같은 비늘이 덮인 코가 아라벨라를 건드리자 아라벨라는 정신을 차렸다.

 

[이것이 우리입니다]

 

...!”

 

슈체른이 웃었다.

 

땅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것 같은 소리에 아라벨라는 다시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보는 것은 처음입니까? 정말로?]

 

그러다 아라벨라는 그 형태가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3.. 그림에 있던... 호숫가의 그...?”

 

그림에는 거대한 바위처럼 나와 있었지만, 아라벨라는 이런 것에서는 틀려 본 적이 없었기에.

 

그리고 슈체른은 긍정하듯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아바트와 그린 그 그림을 본 모양입니다]

 

당신과 많이 닮았지, 돌개바람 같은 아이였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검은 눈은 얼핏 깊어졌지만 아라벨라가 무어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림에 있던 사람들은 그럼... 용의 친구였나요?”

 

[우리는 동지에 더 가깝습니다]

 

동지?”

 

[그런 것은 나중에. 이제는 출발하지 않으면 곧 밤이 될 것입니다]

 

아라벨라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대로 가시나요?”

 

길에 비해 터무니없이 큰 크기로는 몇 걸음 걸으면 산이 다 무너질 것 같다.

 

꼬리까지 흔들리면 주위의 나무고 바위고 다 무너지겠지.

 

의아한 목소리로 올려다보니 다시 심연에서 울리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걸어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요?]

 

뛸 건가요?”

 

그리고 우렁차게 터져나온 웃음소리는 거대한 바람처럼 쏟아졌고 거기에 직격으로 맞은 아라벨라는 쓰러질 것 같았다.

 

슈체른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는 바구니에 거대한 발톱을 둘 넣더니 익숙하게 뒤적였고 그 안에서는 바구니에 다는 끈이라고 생각했던 길다랗고 검은 끈이 나왔다.

 

슈체른은 그 끈을 몸에 둘렀고 잘 맞게 조인 다음 아라벨라의 앞에 등을 내밀었다.

 

검고 탁하게 빛을 반사하는 비늘이 움직임에 따라 흘러가듯 움직이고 몸에 비하면 작다고는 하지만 아라벨라보다는 커다란 가죽 날개가 접혔다가 펴졌다.

 

책에서나 읽었던 거대하고 위대한, 신의 의지라고도 불리우는 몸.

 

자신이 발을 디디고 선 이 산도 신성한 용의 몸이라고 생각했더니 아라벨라는 발을 디디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거대한 검은 용은 입을 열었다.

 

[야 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꼬리가 등을 툭 밀자 아라벨라는 앞으로 휘청이다 검은 끈을 잡았다.

 

슈체른의 몸이 낮아졌고.

 

튕겨 오르듯이 구부린 발을 펴자 쏘아 올린 듯 빠르게 용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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