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물 속에 빠졌다.
처음에 발목까지 오던 물은 어느샌가 내 다리를 휘감아 무릎까지 왔고, 조금 더 지나니 허리까지 왔다.
이 곳은 작은 바위조차 솟아나지 않은 바다의 한복판.
물 밖으로 발을 꺼내려고 했지만 바다는 나를 삼키지도, 뱉지도 않은 채 그저 물고만 있다.
나는 물결을 밟으려던 것을 포기하고는 그 위에 드러누웠다.
머리카락 아래로 거대한 바다가 넘실거리는 것이 느껴졌고, 검푸른색 바다는 하얗게 부서지는 색의 추억으로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눈앞이 하얗게만 보일 정도로 강렬하게 내리쬐던 햇빛.
내 무거운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강한 바람.
발 아래 해파리가 온갖 색으로 떠오르고 유달리 커다란 물결이 올 때마다 펄쩍 뛰어넘던 나와, 너와, 우리.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바다도 끝없이 푸르고.
마치 이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둥글게 이루어진 것처럼 느껴지던 날들.
그 때를 생각하며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어느 물고기가 만들어낸 작은 파도를 발견하고 무심코 뛰어넘었다.
무심코, 이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무심코, 너를 찾았다.
너는 이제 여기 없는데.
누군가 만들어낸 파도가 여러 겹 다가와 부딪혔다.
작은 물고기의 파도를 뛰어넘은 나의 발이 그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다시, 그 물은 나를 휘감았다.
발.
복사뼈.
종아리.
이 검푸르게 넓고 깊은 바다에 내가 가라앉는다.
마치 끌려가듯이.
한 때 세상의 중심에는 우리가 있었는데.
나는 이제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가운데로 가라앉는다.
내 손 옆으로 잔물결이 일었다.
아주 가볍고 부드러워서 알아차리지 못할 뻔한.
내 손 옆에 하얀 깃털이 떠 있었다.
잔물결이 일었다.
잔물결이 일었다.
잔물결이 또 일었다.
네가 아닐까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손에 하얀 깃털이 쥐였다.
깃털 하나.
깃털 둘.
하얀 깃털 작은 다발.
네가 아닐까봐, 라는 말을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검푸른 물 속에서 뛰쳐나왔다.
햇살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가운데 우리는 바다에서 가장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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