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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아이)

2019. 2. 28. 04:51 | Posted by 호랑이!!!

아이, 나 왔어.”

 

버베나가 들어오면 항상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지금 시간은 오후 일곱 시.

 

나는 오전에 깨긴 하지만 항상 버베나가 출근한 다음에야 눈을 뜨기 때문에 오늘 처음 만나는 셈이다.

 

매일 집에만 있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도 버베나밖에 없으니 보통이라면 질릴 만도 한데.

 

언제나 이렇게 얼굴을 보면.

 

버베나가 인사를 건네면.

 

그제야 해가 뜨고 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다.

 

[어서와]

 

내 말은 연결해둔 스피커를 통해 음성으로 전환되어 버베나에게 이동했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었어?”

 

스피커를 통한 기계적인 소리인데도 버베나는 기분을 금방 알아차리고 말을 붙여주었다.

 

[바깥을 봤는데 제비 둥지가 생길 것 같아. 봄이 오려나 봐. 이제 옷도 새로 꺼내고 이불도 바꿀 때가 왔어]

 

작은 새 두 마리가 입에 진흙이며 풀 따위를 물고 종종거리는 모습은 귀여웠다.

 

제비? 어디?”

 

그래서 이 질문에는 답하기 거리껴졌다.

 

어디냐니까.”

 

[베란다]

 

역시나 버베나는 당장 휴대폰으로 손전등을 켜고는 벽을 이리저리 살폈다.

 

베란다가 더러워지겠다며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말하지 말 걸 그랬나.

 

하지만 이상하게도, 버베나가 물으면 전부 대답하게 된다.

 

그리고 저렇게 피곤해하고, 짜증내는 모습까지도 전부 좋아하니까.

 

진흙을 긁어낼 것을 찾는 버베나에게 말을 걸었다.

 

[버베나, 따뜻한 물 받아 놨어. 목욕하고 싶지 않아?]

 

할거야, 이것만 떼고.”

 

[일정 보니까 내일하고 모레 쉬던데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해]

 

내일 휴일이야?”

 

나는 버베나의 일정을 적어둔 달력을 꺼내왔다.

 

달력에는 내일과 모레 날짜에 주욱 선이 그여 있고 그 아래에는 쉬는 날이 별 다섯 개와 함께 적혀 있었다.

 

버베나는 휴대폰 손전등을 껐다.

 

그랬지 참. 나 씻을게.”

 

버베나는 옷을 휙휙 벗어 세탁기에 넣었다.

 

[별일이야, 버베나가 휴일을 다 까먹네]

 

두 주에 이틀이나 쉴까말까 하는 버베나는 천재가 붙는 컴퓨터 개발자... 라고 했다.

 

딱 한 번 동료를 우연히 본 적 있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버베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고 버베나는 그 사람과 내가 같이 있는 것을 보자마자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했지.

 

당연한 일이다.

 

이 집은 나와 버베나의 사랑의 집인걸.

 

나도 버베나를 사랑하고 버베나도 나를 사랑해.

 

게다가 버베나는 자기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한다고.

 

왜냐하면 버베나는 그만큼 나를 사랑하고, 또 아끼고, 조바심내니까.

 

조바심이라니.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내가 다른 것을 말할 때마다 당혹스럽게 쳐다보는 눈 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냈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뭘 알아냈는지, 어떤 기분인지 집요하게 묻는 모습이라니.

 

[....]

 

너무 귀여워.

 

그러니 절대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동네의 cctv에 접속하는 방법을 알아낸 걸.

 

세탁기의 전원을 켜고 세제를 정량 넣으면서 욕실에 대고 저녁을 먹었냐고 묻자 나와 함께 먹고 싶어서 사왔다고 한다.

 

나는 지나치게 깨끗한 부엌으로 눈을 돌렸다.

 

최신식 가전이며 불이 나지 않는다는 전기 레인지가 다 무슨 소용이람, 냄비도 도마도 식칼도, 하다못해 수저까지 하나도 없는 휑한 부엌은 어느새 버베나가 쓰는 노트와 가끔 오는 택배상자로 가득해서 가끔은 저 곳이 산지 몇 주나 된 부엌이 아니라 이사를 덜 마친 새 집 같이 느껴졌다.

 

버베나가 나와서 머리를 말리고 저녁거리를 꺼내놓는 사이 나는 영화를 틀어놓고 거실 불을 희미하게 낮췄다.

 

 

 

 

 

 

 

 

아침.

 

오늘도 정확히 열한시에 일어났다.

 

일어나 하품을 하고 잠에서 깨자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버베나를 깨워버렸다.

 

“...지금 몇 시야...?”

 

[열한 시. 더 자도 돼]

 

아냐,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곧 나가야 해.”

 

[모처럼 휴일인데?]

 

중요한 약속이라서 그래.”

 

나보다 중요해? 라고 묻고 싶었다.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하나도 모르나봐.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자 버베나가 미소를 지었다.

 

아이, 오늘 날씨는 어때?”

 

[따뜻한 봄 날씨야. 일찍 들어올 거라면 얇은 코트 하나만 걸치고 나가도 돼]

 

늦게 들어오면?”

 

[늦게 들어올 거야?]

 

최대한 일찍 올게. ...내 까만색 바지 봤어?”

 

[어제 빨아서 말려 놨어, 줄에 가서 봐]

 

버베나는 바지를 꺼내오더니 급하게 다림질을 하고 옷을 입고 머리를 매만졌다.

 

나 잘생겼어?”

 

[]

 

다녀올게 그럼.”

 

버베나는 급하게 신발을 신으며 문을 열었다.

 

[잘 다녀-]

 

.

 

문이 요란하게 닫혔다.

 

어딜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걸까.

 

뭐 그거야 알아보면 되니까.

 

우선은 거실의 커튼을 걷었다.

 

두꺼운 커튼을 걷자 흐린 유리 너머로 작은 제비가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나중에 버베나가 돌아오면 오늘은 그냥 쉬고, 내일은 유리를 닦아달라고 해야겠다.

 

청소는 어제 했고, 이젠 할 일도 없으니까 버베나를 찾아 볼까!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담 위를 걷듯이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건너자 집 주변 카메라에 접속되었다.

 

잘 다림질된 버베나의 다리가 저만치에 보였다.

 

조금 더 먼 카메라로 살금 뛰어오르고, 역 안 카메라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또 지하철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계속 뛰어갔는지 지하철 안에서야 간신히 숨을 고르고 땀을 닦는 모습이 마냥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그리고 문이 닫히고 출발한다.

 

어디서 내렸으려나, 그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역 카메라에 전부 접속해서 지켜보았다.

 

이렇게 카메라에서 카메라로 이동하는 건 참 빠르고 쉬운데, 직접 가려면 시간이 꽤나 걸리는지 벌써 십 분이나 지났다.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려 따닥 따다닥 소리가 나고 그 뒤로도 십 분이 지나자 번화가 쪽 역에서 내리는 버베나의 모습이 나타났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단번에 풀리고 바짝 조여 들었던 신경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져 안도의 한숨을 쉬며 느긋하게 카메라를 확대했다.

 

길을 걷고, 카페로 가서...

 

그 때 문자가 도착했다.

 

물건을 구입해달라는 내용이다.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내리고 구입할 목록을 확인했다.

 

버베나가 부탁하는 거의 유일한 일이니까,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을 수 없지.

 

일단은 우유, 시리얼, 과일이 포장된 컵, 과자, 아이스크림, 커피, 새 수건하고 슬리퍼, 칫솔, 샤워 가운, 프릴이 달린 여성용 와이셔츠와 스타킹 등등.

 

나한테 입히려고 사는 걸까?

 

아니면 버베나에게 새 취미가 생긴 걸까.

 

별로 내 옷 스타일은 아니니까 버베나의 새 취미면 좋겠다.

 

여기저기 사이트를 찾아보고 배송과 가격, 품질, 후기까지 따져보고 송금까지 하니 시간이 꽤나 지나 있었다.

 

아직 버베나가 그 카페에 있을까?

 

나는 다시 카메라들을 켰다.

 

그리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자 앱을 선택했다.

 

그 여자 누구야

 

(사진이 첨부되었습니다)

 

누구냐고

 

버베나

 

연달아 보내자 전화라고 생각했는지 버베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내가 부르고 있는데.

 

버베나는 핸드폰을 뒤집어 내려놓았다.

 

나는 통화 앱을 켰다.

 

여보세요.”

 

[그 여자 누구냐니까!]

 

통화가 끊어졌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거절된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거절된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내가 먼저로 끊었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마침내 버베나가 전화를 받았다.

 

아이.”

 

[왜 내 전화 안 받아? 내 문자는 왜 안 봤어? -]

 

지금 집에 갈게. 집에서 이야기하자.”

 

[먼저 대답부터 해 줘!]

 

전화가 끊어졌다.

 

버베나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여자에게 사과하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 여자는 웃고 있었다.

 

웃으면서 버베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접촉이니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양 손으로 떼어내고 털어낼 줄 알았는데.

 

버베나는 오히려 그 손을 꼭 잡고 손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너무나도 이상한 광경을 이해하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굴렸지만 버베나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알았어?”

 

버베나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을 던졌다.

 

[뭘 말이야]

 

내가 웹스터랑 있는 거 어떻게 알았냐고.”

 

[카페에 카메라 있잖아. 그걸로 봤어]

 

그리고 버베나는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 라는 질문을 연달아 퍼붓더니 버베나는 내가 입을 열자 손을 뻗어 가로막았다.

 

“...됐어.”

 

[뭐가 됐어, 왜 화났어]

 

넌 실패야.”

 

버베나는 나에게 손을 뻗었다.

 

왜 나를 그렇게 불러, 라고 말하기도 전에 정신이 희미해졌다.

 

다시 의식이 돌아온 곳은 하얗고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주변을 살피자 이 곳이 날씨에 비해 너무 추운 곳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일어났어, 아이?”

 

언제나 내게 연결되었던 스피커가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대신 나는 문장을 적었다.

 

누구야

 

버베나의 상사. 아이의 이야기는 들었어. 버베나는 폐기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까워서 내가 대신 받았지.”

 

아이라고 부르지 마. 그건 버베나가 날 위해 지어준 이름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 상사라는 사람은 내 카메라 렌즈를 살피더니 거울을 가져다주었다.

 

넓적한 모니터.

 

그 가운데 덩그러니 띄워져 있는 프로그램 창.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A.I (테스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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