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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3

2019. 2. 3. 16:29 | Posted by 호랑이!!!

 

아침이 되자 아라벨라는 몰래 마굿간으로 내려갔다.

 

“...데일라.”

 

하얀 말이 아라벨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마굿간에는 말과 아라벨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안됩니다 아가씨.”

 

“...”

 

일찍 일어나셨으면 식사를 우선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마르틴 도련님도 식당에 계십니다.”

 

뒤에서 하얀 말이 푸르륵 소리를 냈다.

 

아라벨라는 아쉽기 그지없다는 눈초리로 돌아보았으나 집사는 단호했다.

 

밥보다 내 짐을 보고 싶은데.”

 

아가씨의 짐은 시녀들이 싸고 있습니다.”

 

바지는?”

 

없습니다.”

 

승마용은?”

 

없습니다.”

 

슬리퍼.”

 

없습니다.”

 

그럼 집 안에서는 뭘 신어?”

 

하이힐입니다.”

 

그런 걸 신고 화장실에 가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귀족 아가씨 입에서 화장실이라는 말은 부적절하다는 말조차 안 나온다.

 

아라벨라는 식당에 들어섰다.

 

긴 식탁에는 한 사람분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사피야와 꼭 닮은 새까만 머리에 아라벨라와 닮은 하늘색 눈 꼬마가 식당 안을 돌아다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후다닥 자리에 달려갔다.

 

내 것도 가져와.”

 

알겠습니다, 아가씨.”

 

집사가 나가고 아라벨라는 성큼성큼 걸어서 마르틴의 맞은편 자리에 털석 앉았다.

 

마르틴은 힐끔 위를 쳐다보았다가 아라벨라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고개를 푹 숙였다.

 

아라벨라는 그 모습을 보다가 다리를 꼬았다.

 

가죽신이 마르틴의 무릎 위에 턱 얹혔다.

 

당황한 것인지 꼼지락거리자 다리가 무릎 아래로 떨어졌고 아라벨라는 반대로 다리를 꼬았다.

 

발로 툭툭 건드리자 마르틴은 아라벨라가 장난을 거는 것을 깨닫고 의자를 손으로 짚은 채 아라벨라의 다리 위에 자신의 다리를 올렸다.

 

그러면 아라벨라는 또 다른 다리를 그 위에 올리고 마르틴도 다른 다리를 위에 올리고.

 

누가누가 제일 위에 다리를 얹나 하는 장난질을 하느라 식탁은 덜그럭거렸다.

 

가져왔습니다.”

 

덜그럭거리던 것이 일시에 뚝 그친다.

 

집사가 달걀이며 수프, 과일, 부드러운 빵 같은 것을 내려놓고 나갈 때까지 아라벨라와 마르틴은 입을 꾹 다물고 서로만 쳐다보았고, 그 기묘한 침묵은 유지되었다가 나가며 문이 닫히는 소리에 깨어졌다.

 

깔깔깔깔.

 

마르틴이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아라벨라는 같이 하하 웃다가 마르틴의 다리 위에 얹어두었던 발을 내렸다.

 

마르틴은 깔깔 웃다가 얼핏 아라벨라를 닮은 눈을 반짝였다.

 

누나라고... 불러도 될, 되겠습니까?”

 

다시.”

 

누나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냐, 그런 거 말고.”

 

누님?”

 

“‘누나라고 불러도 될까?’”

 

누나라도 불러도 돼?”

 

어디 보자...”

 

아라벨라는 잠시 생각하는 척을 했다.

 

턱에 손을 대고, 심술궂게 눈을 찡긋거리며 쳐다보자 마르틴은 입을 한일자로 딱 다물었고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가 아라벨라의 으으음-’이 노래 멜로디를 따라가자 또 장난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라벨라의 다리를 툭 쳤다.

 

아라벨라는 마르틴이 인상을 와락 구기자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가 가까스로 입을 가렸다.

 

“...그래, 너 내 동생 해. 내가 누나 할게.”

 

그러자 마르틴의 눈이 접시만큼이나 커졌다.

 

! ! 응응!”

 

귀엽기도 하지.

 

둘 사이에 있는 것이 넓기 그지없는 이 식탁이 아니었으면 손을 뻗어서 머리를 쓰다듬었을 것이다.

 

...아니지, 하면 되지.

 

아라벨라는 신을 벗어던지고 식탁 위로 무릎을 올렸다.

 

손을 뻗자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는 마르틴의 머리가 잡혔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마구 쓰다듬자 머리도 같이 흔들리면서 아래에서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난다.

 

마르틴도 앉은 채로 손을 휘저었지만 팔은 아라벨라에게 닿지 않았고 마르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발뒤꿈치를 들었다가, 마침내는 비틀거리면서도 의자 위로 올라갔다.

 

어쭈, 어쭈, 어쭈-”

 

무슨 웃음소리가 이렇게 커!”

 

문이 벌컥 열렸다.

 

셰필라 백작이 등장함과 동시에 마르틴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둘 다 무슨 짓이야! 아무리 집에서라지만! 그 꼴이 대체 뭐야!”

 

그제야 둘은 식탁과 의자에서 내려왔다.

 

보기도 좋고 먹기도 편하도록 차려진 음식은 장난을 치는 동안 이리저리 밀려나 있었다.

 

마르틴은 슬쩍 과일 그릇을 떨어지지 않게 밀었다.

 

누나라고 하나 있는 것이 동생에게 나쁜 영향이나 미치고, 내가 너무 심했나 보러 왔지만 전혀 심하지 않았구나. 오히려 진작에 보냈어야 했어!”

 

아라벨라는 고개를 숙였다.

 

‘...우리 웃음소리는 크면 안 되고 자기 고함소리는 커도 된다는 건가. 귀족답지 못하시군요 아버지... ...아 말 타고 싶다. 어제 좀 빨리 달렸던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마르틴한테도 말 타는 거 가르쳐줘야 하지 않나. 그래도 내가 이 왕국에서 제일 말 잘 타는 사람인데 내가 가르쳐줘야...’

 

제일 말 잘 타는 사람이라는 말 뒤에 비공식, 이라고 덧붙이면서 아라벨라는 한참 시간을 보냈다.

 

그다지 티를 낸 적은 없지만, 셰필라는 아라벨라가 싫어하는 특성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 중에 하나는 쓸데없는 말이 많다는 특성도 들어간다.

 

그래서 계속 안 듣다 보니 아라벨라는 셰필라가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결정이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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