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끝내주는 하루였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길에는 발을 밟혔고, 비싸게 주고 산 새 우산은 도둑맞았으며, 그래서 우산 없이 걷고 있는데 소나기가 쏟아졌고, 비를 맞은 핸드폰은 방전되고, 축축한 머리로 발표할 때 스피커는 갑자기 먹통이 되기까지 했지.
6시가 되어 가방을 싸서 나왔다. 그게 딱 하나 좋은 일이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은 질척거렸고 삐걱거리는 보도블록을 밟았더니 밑에서 물이 왈칵 솟아 양말을 적셨다.
“어이, A씨.”
욕설이나 퍼부으려는 순간 단골 음식집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엇,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늘 신메뉴 나왔는데 어때?”
비가 내린 뒤의 습하고 차가운 공기에 따뜻한 열이 느껴졌다.
겨우 냄새나 맡았을 뿐인데 입안 가득 육즙이 흐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한 튀김 냄새가 났다.
“...좋아요!”
미리 준비하기라도 하신 건지 갓 튀긴 것이 바로 상자에 담긴다.
음식을 계산하는데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가을 날씨가 왜 이렇단 말인가.
가을 비는 그 뭐냐, 빗자루로도 막아진다며? 가뜩이나 짧아지는 가을이건만 그 아이덴티티까지 짧아지다니 애도를 금할 길이 없다.
지하철에서 내리고도 몇 분은 걸어야 하니 음식을 받고서는 편의점으로 가 우산을 샀다.
그리고 과자랑, 그리고 사탕도.
그러면 목막히니까 음료수랑- 아, 이 아이스크림 할인하네.
한뭉텅이를 안고 생각해보니 집 근처에도 같은 편의점이 있다.
언제 해도 늦었다는 후회나 하며 지하철에 올라탔더니 금요일 퇴근길이라 사람으로 붐볐다.
내가 정말 저기 끼어들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지하철에 탔다기보다는 인간 사이에 끼어있었다고 할 만한 곳에서 내리자 공기의 차가움마저도 산뜻하다.
계단을 올라가며 보니.
저 먼 지상에서 안으로 노을과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호박색 하늘은 몸을 데우고 같은 색의 나뭇잎들을 더욱 찬란한 황금색으로 빛냈다.
화사한 금빛이 나부낀다.
하늘이, 낙엽이, 나무가, 따박따박 걷는 이 길이 온통 금빛이다.
흩날리는 나뭇잎이 빗소리처럼 상쾌하게 흘러간다.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면 집 안이 온통 붉은 빛.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드라이어 대신 선풍기를 틀어 머리와 몸을 말리며 자리에 앉는다.
테이블 위에는 아직 따뜻한 닭튀김.
얼음을 넣은 유리잔 가득하게는 콜라.
하얀 종이상자를 열어보았더니 저도모르게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대애박, 치즈 웨지감자 넣어주셨네.”
오늘도 끝내주는 하루였다.
그리고 그 지상과는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서.
머리 위에 빛나는 고리가 떠 있는 누군가는 단골집 사장이 너머에 있는 문을 확인했다.
그 사장은 단골 손님이 행복한 얼굴로 음식을 사가는 것을 보았다.
“B의 천국, 이상 없습니다.”
누군가는 안락의자에 앉아 잡지를 보는 사람이 너머에 있는 문을 닫으며 무전기에 속삭였다.
“C의 천국, 이상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빈 통을 밀어두고 침대로 몸을 던지는 A를 보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A의 천국, 이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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